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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기업’ 하면,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트렌드를 가장 먼저 포착하는 회사, CEO의 지시를 바로 실행에 옮기는 회사, 신기술을 누구보다 앞서 개발하는 회사, 고객의 니즈에 재빨리 부응하는 회사, 아니면 환경변화에 따라 변신을 거듭하는 회사? 맞습니다. 이들 다 빠른 기업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의 빠르기는 모두 같은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빠르다는 말의 의미가 생각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실 텐데요. 마치 단거리 선수로 성공하려면 장거리는 출전조차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강점 분야끼리 상호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스피드입니다. 이건 용어에서도 나타나는데요, 오늘은 빠르기를 나타내는 다양한 용어를 기업 경영에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포스팅해보겠습니다.
빠르기를 표현하는 용어들 중 가장 먼저 얘기할 것은 스피듭니다. 스피드는 ‘시간 분의 거리’인데요. 자동차가 1시간에 100km를 갔다면 스피드는 시속 100km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물리학에서는 스피드와 구분해서 쓰는 벨로서티(velocity)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스피드가 속력이면 velocity는 속도인데요. 스피드가 단위 시간 내 이동 거리인 반면 velocity는 단위시간 내 위치의 변화량을 의미합니다. 거리와 위치 변화량,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만약 자동차가, 직선으로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렸다면 스피드나 벨로서티나 값이 같습니다. 움직인 거리도 100KM이고 출발점으로부터의 위치 변화도 100KM이니까요. 하지만 1시간 만에 5km의 원형코스를 20바퀴를 돌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스피드는 여전히 시속 100KM이지만 velocity는 대폭 줄어듭니다. 원을 도느라 출발점에 멀리 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죠. 극단적으로 만일 1시간에 20바퀴를 돌아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왔다면 벨로서 티는 0이 되고 맙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한 때 연구자들은 기업의 빠르기는 스피드가 아닌 벨로서티를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는데요. 빠르게 움직였다면 스피드는 높겠죠, 하지만 실제로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시행착오를 많이 범했다면 출발점으로부터 멀리 못 갔을 겁니다. 따라서 벨로서티는 낮을 거고요. 경영의 스피드는 빨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앞으로 나아갔나를 재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죠. 이렇게 한동안 벨로서티 지지론이 우세를 보였지만 요즘 분위기는 좀 달라졌습니다. 환경을 예측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 방향을 확신한 후 움직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인데요. 빨리 움직여야 방향에 대한 감이라도 잡을 수 있고, 특히 업계 선도 기업이라면 누구도 갈 길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스피드가 높아야 벨로서티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스피드와 벨로서티 외에도 애 질리 티(agility), 즉 민첩성이라는 용어도 빠르기를 표현하는데 자주 쓰입니다. 스포츠 과학에서 많이 쓰이는 agility는 신체동작이나 운동의 방향을 신속히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요, 좀 전에 직선 고속도로에서 달리느냐 원형 트랙에서 달리느냐에 따라 벨로서티 차이가 크다고 말씀드렸지만, 애 질리 티는 운동경기로 치면 트랙경기에서보다는 코트 경기에서 필요한 빠르기죠. 농구경기에서 예고도 없이 공이 내 쪽으로 올 때 몸통을 민첩하게 돌리면서 공을 캐치하는 능력, 그리고 공을 잡기도 전에 상대편 선수들과 우리 편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바로 민첩성입니다. 그래서 스피드나 벨로서티가 action으로 나타난다고 하면, 애 질리 티는 주로 자극에 대한 반응, 즉 리액션으로 나타는데요. 상황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할 때 민첩성은 특히 빛을 발합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빠르기 용어가 있습니다.‘걷거나 달리는 속도’, ‘경기 진행 속도’를 의미하는 페이스(pace)는 시작부터 완결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염두에 두고 속도를 조절할 때 요긴합니다. 특히 기술개발팀과 같이 한정된 리소스로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완급 조절이 중요한데요. 중간에 지쳐버리면 에러가 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죠. 그런가 하면 시장이 요구하는 리듬이나 사이클을 의미하는 카덴스 역시 요즘 많이 사용되는 용어인데요, 이를테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소프트웨어보다 서비스가 개발 주기가 빨라서, 이 세 가지를 다 하는 회사는 3개의 상이한 카덴스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2개 이상의 카덴스를 가진 회사는 내부에서 서로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데요, 하드웨어 제조를 하던 회사가 소프트웨어를 시작하면 소프트웨어의 카덴스를 자꾸 늦춰 하드웨어에 맞추려고 하고요. 반대로 서비스가 주 사업인 기업이 하드웨어 사업을 시작하면 빨리 만들라고 독촉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볼 때 카덴 스는 높이기도 해야 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조율해야 하는 빠르기이죠.
기업의 스피드를 의미하는 다양한 용어들을 포스팅했는데요.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강조드리겠습니다. 첫째, 빠르기는 다양하게 발현된다는 겁니다. 우리 몸으로 치면, 시력이 좋아 외부의 조짐들을 빨리 포착하지만 몸이 느릴 수 있습니다. ‘아, 자전거가 오는 걸 보긴 했는데 피하지 못했어요’라고 답하는 경우죠. 일단 액션부터 취하고 생각은 나중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사 지시는 빨리 실행하지만 지시가 없으면 시간을 마냥 죽이고 있는 경우, 한번 자기 분야를 정하면 바꾸기 귀찮아하는 경우 등 다양합니다. 조직도 마찬가진데요. 빠르기를 속도나 속력, 민첩성, 카덴스 등 다른 개념으로 한 번 이해해 보면 여러분의 조직을 다양하게 평가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 회사는 느려”라고 뭉뚱그려 단정해온 것을 이제 느린 측면과 빠른 측면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또 사업부 또는 부서 간 마찰이 단순한 부서 이기주의가 아니라 ‘업무에 따라 카덴스가 달라서였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속력에 대해 속도까지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 드릴 내용은 경영 스피드의 공식입니다. 물리에서 스피드 공식이 ‘시간 분의 거리’라면 경영 스피드는 ‘시간 분의 가치’입니다. 즉, 정해진 시간에 얼마나 많은 밸류를 창출하는가가 바로 경영 스피드의 정의죠. 이 정의에 따르면, 빠르다는 것은 가치 창출까지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산출 가치를 더욱 높인다면 그것도 빠른 기업이겠지요. 여기서 밸류는 CEO 지시의 이행이 될 수도 있고, 신제품 개발 완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신제품 출시나 이익이 될 수도 있죠. 분모는 항상 시간이지만 분자는 우리가 기대하는 산출 가치니까요. 스피드 경영은 가장 단순한 공식을 통해 조직과 경영, 그리고 사업의 여러 측면을 분석해 내는 툴입니다. 이 툴이 여러분 회사의 스피드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