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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세계 최대의 장난감 유통업체인 토이저러스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전 세계 1,600여 개 매장과 115억 달러의 매출을 자랑하는 거대 기업의 몰락은, 아마존을 위시한 전자상거래의 파괴력을 다시금 확인해 주는 듯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전통적인 소매 강자인 메이시스, 시어즈, 노드스트롬 등은 매장 상당수를 폐점하거나 비상장 회사로 전환하는 등 시련을 겪고 있는데요. 이처럼 오프라인 소매점들이 전자상거래에 밀려 점차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시기에, 번화가에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 것이 주요 사업인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불레틴입니다.
불레틴은 번화가에 있는 매장을 임대해서, 공간을 나눠 재대여 해주는 매장 공유 회사입니다. 불레틴 스스로를 ‘소매점포를 위한 위워크’라 말하는데요. 주요 고객은 비싼 임대료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 것이 여의치 않은 제조 스타트업들이나, 수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 등입니다. 불레틴의 설립자, 알라나 브랜 스톤과 앨리 크릭 스먼은 2015년 수공예 제품을 소개하고 온라인에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보조적인 판촉의 일환으로 오프라인에서 팝업스토어를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곧 이 둘은 온라인 판매보다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의 매출이 훨씬 더 높다는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들은 오프라인 매장 사업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고, 2016년 11월 뉴욕의 윌리엄스버그에 첫 불레틴 정규매장을 열게 됩니다.
불레틴의 운영방식은 간단합니다. 대형 매장을 임차해서 소규모 스타트업과 수공예 디자이너들에게 매장 공간의 일부를 월 단위로 공간에 따라 최저 300~2,000달러에 빌려주는 건데요. 팔고 싶은 제품의 샘플을 보내면 품질 등을 검토해 입점 여부를 결정하고, 입점이 결정되면 필요한 공간만큼만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됩니다. 이후 제품을 불레틴 매장으로 실어 보내면 바로 판매가 시작되는데요. 제품 심사에서 판매가 시작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5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매장을 직접 내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과 간소한 절차로 오프라인 판매를 할 수 있다 보니 많은 소규모 업체들이 몰렸고, 이에 2017년 2월, 뉴욕 소호에 이어 연내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의대 도시에 5개 매장을 더 개설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목 좋은 곳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려면 높은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 인건비 부담 등 많은 비용이 소요됩니다. 게다가 보통 임대차 계약은 1~2년 이상의 장기로 맺어지기 때문에, 사업이 잘 되지 않더라도 높은 임대료를 계속 부담해가며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도 있죠. 또 그것을 감수하고 큰 비용을 들여 매장을 낸다 하더라도, 인지도가 별로 높지 않은 브랜드 매장일 경우 소비자가 선뜻 들어서는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러한 고비용이나 장기간 계약의 위험, 인지도의 한계 등으로 소규모 스타트업이나 개인 사업자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불레틴은 이러한 기업들에게 저비용으로 고객과 직접 만나고 소통,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매장의 선반 하나, 혹은 벽 한 칸만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최저 월 300달러로 매장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거죠. 게다가 월 단위 계약으로, 언제든 철수할 수도 있고요. 판매나 재고 집계 등의 매장 관리와 관련된 업무는 불레틴 소속의 매장 직원이 알아서 대신해주기 때문에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저렴한 임대료만으로 소규모 기업들은 고객과 직접 대면하고 소통하며,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과연 오프라인 소매점이 몰락하는 온라인 쇼핑 시대에 고객들이 불레틴을 찾아와 줄까요? 이와 관련해 불레틴의 창업자들은 말합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망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옛날 방식의 오프라인 매장이 망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오프라인 소매점의 붕괴를 막으려면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게다가 불레틴은 쏟아지는 온라인 정보 홍수 속에 자칫 지나치기 쉬운 이색적인 상품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합니다. 물론 세제나 휴지, 기저귀 등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주문하는 표준화된 제품의 경우 온라인에서 가격을 비교해 사는 것이 효율적이죠. 그러나 스타트업이 내놓은 혁신적인 제품이나, 자신의 개성과 기호를 드러내는 니치 시장 향의 제품들은,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것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은데요. 불레틴은 이러한 소비자들에게 신박한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제공함으로써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브랜드의 론칭 파티 등을 통해 오프라인 매장을 그저 판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경험해보고, 이런 새로운 것들에 열광하는 커뮤니티를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겁니다.
한 벤처 투자가는 불레틴에 대해 이러한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백화점, 쇼핑몰 대신 불레틴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소매업의 미래를 재건할 것이다. 위워크의 가치가 임대료가 아닌 사람들과의 네트워크인 것처럼, 불레틴은 전 세계 브랜드와 고객을 연결시켜 줄 수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온라인 공간에서만 가능한 것일까요? 참여자들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장이 있다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바로 그곳이 플랫폼이겠지요. 기업들에게는 비용을 낮춰주고, 소비자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 플랫폼으로 유인하고 있는 불레틴, 오프라인 소매업 몰락의 시대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