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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실체 없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부터, 산업과 인간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고 보는 견해까지 의견이 분분한데요. 확실한 것은 적어도 합리적이고 지적인 판단의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향후 10년간 현존하는 직업의 50%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재기될 정도죠. 이를 두고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이자, 세 차례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마음으로 일하는 직업만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을 것이고, 앞으로는 이런 일자리가 더 많아질 것이므로 그리 비관할 필요가 없다”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프리드먼이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며 마음과 마음을 잇는 기업으로 즐겨 소개하는 기업이 있는데요. 바로, 페인트 나이트입니다.

 

페인트 나이트는 미술 강사들을 모집해 지역의 식당, 카페, 바 등을 빌려 미술 교실을 열면, 사람들이 모여 가볍게 차나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주선하는 플랫폼입니다. 페인트 나이트와 라이선스를 맺은 강사는 자유롭게 자기 지역의 식당이나 바를 빌려 미술 교실을 개최하고 페인트 나이트는 티켓을 판매해줍니다. 미술에 전혀 재능이 없는 사람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수업 난이도를 낮췄고요. 음식과 술을 자유롭게 주문해 마시면서, 페인트 나이트가 빌려주는 미술도구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마치고 나면 본인의 작품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평일 저녁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 고전하던 동네 중소 식당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준 것은 덤입니다.

 

2012년 초, 창업자 덴 허만은 특별한 생일파티에 초대받게 됩니다. 간단히 술과 음식을 즐기며 미술 강사를 초청해 각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며 시간을 보내는 파티였죠. 이 파티를 계기로 그는 친구 션 맥그레일과 함께,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즐기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사업모델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2012년 3월 7,000달러를 투자해 페인트 나이트를 설립합니다. 처음 보스턴 몇 곳에서 미술 강좌를 열기 시작해 이제는 전 세계 1,500여 개 도시에서 매달 17만여 명이 페인트 나이트를 통해 4,700회의 미술교실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2016년에는 매출 5,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美 경제매체 INC가 선정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비상장기업’ 2위에 기록되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페인트 나이트는 미술 교실 하나로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리 하이테크가 우리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하더라도, 무엇인가를 창작하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욕구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 욕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소셜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가까운 지인들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가상공간이 아닌 식당이나 술집에서 직접 만나 대화하는 시간에 목말라 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창작을 할 수 있는 창구를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어떠한 기술이나 환경의 변화에도 불변하는, 오히려 강해지고 있는 니즈를 충족하는 서비스라 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페인트 나이트의 주요 성장의 비밀이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친밀하게 어울리고, 무엇인가를 창작하고자 하는 불변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했는가의 문제가 남아 있을 텐데요. 여기에, 두 번째 성장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모여 가볍게 술과 음식을 나누며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paint and sip> 서비스는 2012년 이전에도 존재했는데요. 그런데 기존 모델들은 미술 강사들과 가맹 계약을 맺어 적게는 만 달러에서 많게는 10만 달러까지 프랜차이즈 비용으로 부과했고, 직접 매장을 열도록 했기 때문에 강사들에게는 매장 임대료의 부담도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프랜차이즈에 참여하는 미술 강사의 수도 매우 적었고, 임대료 부담 때문에 다소 접근성이 떨어지는 교외 지역에 매장을 열 수밖에 없었죠. 미술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큰맘 먹고 미술 강좌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주가 되고, 미술 수업의 내용도 이들에 맞춰 전문가 수준의 매우 어려운 내용에 치중하게 되었고, 이들 서비스는 대중적으로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두 창업자는 초기 자금이 없는 사람도 쉽게 미술 강좌를 열 수 있는 모델을 고민했고, 결국 프랜차이즈 대신, 라이선스 모델을 채택하게 됩니다. 즉, 강사들에게는 라이선스를 주고, 수업을 개최하면 티켓 판매를 대행해 주며, 수업에 필요한 미술 도구 등을 대여해주는 역할만을 하는데요. 식당 예약에서부터 나머지 강좌 준비는 미술 강사들이 전담하고, 대신 티켓 판매대금의 70%를 강사 몫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업에 쓸 미술도구나 물감 비조차 대기 어려운 강사들을 위해 최대 3,000달러의 재료비를 대출해주고, 강좌가 열릴 때마다 수익금으로 200달러 정도씩 갚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질병을 진단하고, 로보 어드바이저가 금융 투자를 대신하는 시대. 우리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니, 우리에게 남겨진 가치는 무엇일까요? 재능만 있다면 누구나 미술 선생님이 될 수 있고, 또 누구나 부담 없이 와서 그림을 그리며 웃고 즐길 수 있는 동네 감성 사랑방을 전 세계 곳곳에 만들고 있는 페인트 나이트.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의 틈바구니에서 알게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는 우리들에게 작은 위로이자, 희망을 안겨주는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