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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혹시 양말을 신고 계신다면 양말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아마도 열 분 중 아홉 분은 남색이나 검은색, 회색의 단색 양말이거나, 또는 줄무늬나 아가일 무늬 양말을 신고 계실 것 같고요. 또 대부분은 어디에서 산, 어느 브랜드의 양말인지 기억해 내기 어려우실 겁니다. 이처럼 양말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특별한 패션 아이템이 아니지요. 그런데요. 독특한 디자인을 무기로 럭셔리 양말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스탠스(Stance)입니다.
휴랫 패커드에서 벤처투자 담당 임원으로 일하던 제프 컬은 바쁜 실리콘 밸리를 떠나 몇 년간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고, 남캘리포니아의 한적한 해변도시 샌클레멘테로 이주하게 됩니다. 해변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며 실리콘밸리에서의 생활을 반추하던 컬에게 어느 날 한 가지 생각이 스치게 되는데요. “꼭 하이테크여야만 스타트업 창업이 가능할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컬은 하이테크가 아닌 아이템으로 창업을 해 보기로 마음먹고 무작정 대형마트인 <타깃>을 방문하는데요. 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하나같이 비슷한 디자인으로 채워진 양말 코너를 본 그는, 양말을 창업 아이템으로 삼기로 합니다. 양말은 사업 아이템으로써 신선하지도 않고, 혁신이라는 것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양말은 작은 혁신만으로도 차별화가 가능한 아이템이라 믿었기 때문이죠. 이에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때부터 친분이 있던 존 윌슨 등 4명과 함께 2009년 럭셔리 양말 브랜드 스탠스를 설립합니다. 무채색에 단조로운 무늬가 대다수인 기존 양말과 달리 스탠스 양말은 유명 운동선수 얼굴이나 화려한 무늬를 양말에 프린트하는 등 독특한 디자인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는데요. 2010년 시장 출시 이후 2014년까지 4년간 약 1,500만 켤레의 양말을 판매했고, 2015년에는 한 해 동안 지난 4년간의 판매량에 맞먹는 1,200만 켤레를 판매하기에 이르렀는데요. 스탠스가 이토록 놀라운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스탠스는 10달러선에서 40달러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양말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이는 보통 양말 3~4배 이상의 높은 가격입니다. 때문에 스탠스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공을 들여오고 있는데요.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을 위해 스탠스는 오프라인 판매전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자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온라인 판매를 부분적으로 하고는 있지만, 이는 15달러 미만의 저가 제품에 한정하고 있고, 중고가 제품은 고급 백화점인 <노드스트롬> 등 파트너십을 맺은 소매점을 통해서만 오프라인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유통비 절감을 위해 온라인 판매 비중을 높이려고 애쓰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창업자인 제프 컬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e-커머스 업체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어디에서 파느냐가 무엇을 파느냐 만큼이나 중요하다.”라고 얘기하면서 전략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2015년부터는 뉴욕 소호지역에 대형 플래그쉽 매장을 여는 등 자체 오프라인 판매 채널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라는 것은 매우 긴 시간을 두고 축적해 나가야 하는 데 반해, 어쩌면 판매고를 즉각적으로 높이는 데에는 큰 효과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스탠스가 택한 전략은 스타마케팅을 통한 판매 증진이었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창업자들은 배우 윌 스미스, 힙합가수 제이지, 농구선수 드웨인 웨이드 등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계 각 분야의 유명인을 투자자로 유치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에 활용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농구선수들의 얼굴을 양말에 프린트하거나, 유명 아티스트가 직접 디자인하고 그의 이름을 딴 양말 라인도 출시했는데요. 셀러브리티가 직접 디자인하거나 그들의 얼굴이 새겨진 양말은 팬들에게 양말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특별한 아이템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를 갖게 된다는 것을 노린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쉽게 살 수 있는, 무얼 신으나 다 똑같은 양말이 아니라 양말을 통해 자신의 팬덤을 표현하고 소소한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스몰 럭셔리로 포지셔닝한 것이죠.
스탠스가 양말이라는 경공업 제품으로 이토록 고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디자인이나 스타를 동원한 마케팅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샌 클레멘테에 있는 스탠스 본사에는 R&D 센터가 있는데요. 양말(Socks, Hosiery), 연구(Research), 엔지니어링(Engineering), 개발(Development)의 앞글자를 따 ‘SHRED Lab.’이라 이름 붙인 이곳에서는 양말에 프린트를 보다 선명하게 할 수 있는 방법, 착용감이나 탄성 등을 향상할 수 있는 직조 방법 등을 개발하고 신제품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양말에 연구, 개발이라는 단어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착용감 등 품질 면에서도 중저가 양말들과 확실히 차별화하겠다는 것이죠. 스탠스는 2015년 4월 미 프로농구 NBA, 그리고 2016년 5월에는 메이저리그 야구와 경기 중 선수들이 착용하는 양말을 전속으로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제 흰 바탕에 팀 로고가 전부인 양말이 아니라 다채로운 디자인의 양말을 스포츠 경기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선수의 경기력을 중요시하는 프로 스포츠와의 공급 계약은 연구개발을 통한 품질향상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혁신(innovation)은 사전적으로 ‘새로운 방법이나 아이디어, 제품 등을 도입해 묵은 것을 완전히 바꾸는 것’으로 정의되는데요. 그 어떤 사전에서도 혁신의 대상이나 수단이 하이테크여야 한다고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묵은 것’이야말로 혁신의 대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혹시 지금 몸담고 계신 분야가 너무나도 고리타분해서 더 이상의 혁신은 불가능할 것 같으신가요. 그렇다면 바로 그 고리타분하고 묵은 것에서부터 혁신의 기회를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