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학개론

일성록, 국가기록물이 된 왕의 일기

biumgonggan 2017. 1. 5. 00:20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기록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개인적으로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정조가 추가한 새로운 기록, 일성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일성록은 정조가 작성한 일기가 정식 국가기록으로 변모한 기록입니다. 이 일성록은 1910년 대한제국이 마감될 때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일기가 정식 국가기록화 된 조선의 첫번째 관찬사료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도를 사도세자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였습니다. 불안했던 후계자 구도에 어려서부터 정국동향에 민감했다고 합니다.

 

 

1776년 즉위한 정조는 개인적 감정을 배제한 사사와 사건을 일기로 기록하였습니다.

정조의 즉위를 반대했던 화완옹주와 정후겸, 홍인한 일당의 무례함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조가 일성록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아버지 사도세자와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만 남아있었기에

사료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일성록이라는 새로운 기록시스템을 만들었을까요?

 

 

정조는 "좋은 국왕이 되고 훌륭한 정치를 펴기 위해서는 과거의 정책을 끊임없이 검토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성록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날을 거울 삼는 것은 오늘을 살피는 것만 못하고, 남에게서 찾는 것은 자기의 몸에 돌이켜보는 것마나 못하다"

 

 

조선왕조실록은 임금은 아예 볼 수 없는 기록이었으며,

승정원일기는 임금도 볼 수는 일지만 과거의 기록이고, 주제가 제한적이고 내용이 너무 방대했었기에

정조에게는 새로운 형식의 자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왕이 죽은 뒤 자료편찬과 정리작업이 시행되었던 반면,

일성록은 최신 뉴스를 바로바로 편집하여 기록한 현대의 SNS정도였을까요?

 

 

 

기록은 인간의 경험과 지혜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정조가 원했던 기록은 경험을 축적하고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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